이번 달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알랭 드 보통’ 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집었다. 주인공인 ‘나’는 989.727분의 1의 확률로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클로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 책은 내가 클로이를 사랑하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자문하고 자답하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펼쳐낸 책이다. 철학 전공자의 시선으로 사랑을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심지어는 테러리즘에 빗대어 표현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책 속의 ‘나’에 감정이입이 되어 이 여자가 운명이라고 믿을 때면 아프로디테의 전지전능함을 찬양하면서 한없이 기쁘다가도, 아침을 차려준 클로이에게 고작 ‘잼’이 없다고 싸울 때면 이 남자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나는 정녕 이 책을 다 읽을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에 상심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결국 너희도’ 였다. 책 속의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였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날 나의 사랑 이야기를 반추해보면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겠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 후회는 나를 찬 사람의 몫이다. 헤어지고서 나는 ‘비혼주의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넷플릭스도 보고 책도 읽고 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서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도 생각해보자. 그게 요즘은 ‘선택적 비혼주의자’로 불린다. 내 주위에 많다. 다 맞는 말이다.
책 속의 나는 일요일 저녁이면 때때로 우울해진다. 그때 옆에 앉은 클로이는 내게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142p “나”의 확인
그 순간 ‘나’는 클로이의 말이 나의 슬픔과 딱 들어맞으면서 슬픔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녀를 통해 나는 나의 내면 깊숙이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은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되 인식되지 않은 우리를 하나뿐인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꽃이 되게 하는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책 속의 ‘나’는 클로이와의 사랑을 통해 더욱더 자신에게 다가간다. 상처가 없는 자신만의 굴속으로 빠져들다가도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종종 괜찮은 사람이 없냐는 물음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주기도 하고 나 또한 친척에게서 소중한 연인을 소개받았다. 지금 옆에 연인이 없다면 또 어떠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빈둥대다 보면 어느 틈에 멋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 한줄평 및 별점 > ★★☆☆☆ ( 2점/ 5점 )
특별한 줄 알지만 결국은 비슷한 우리의 사랑 이야기.
<인상 깊은 문구>
-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19p 이상화)
-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72p 마르크스주의)
- 이것에 대해서 무슨 변명이 가능할까? 부모와 정치가들이 메스를 꺼내들기 전에 하는 낡은 말이 있을 뿐이다 –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네 속을 뒤집어 놓는다. 나는 네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너에게 영광을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상처도 주겠다(90p 사랑이냐 자유주의냐)
- 보는 사람의 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보는 사람이 시선을 거둘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어쩌면 그것 역시 클로이의 매력의 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 관한 주관적 이론은 기분 좋게도 관찰자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버리므로(105p 아름다움)
- 내가 클로이에 대해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내가 낭만적 사랑을 자랑하게 된 동기는 어떤 진정한 충동이 아니라 사회가 아니었을까?(111p 사랑을 말하기)
-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143p “나”의 확인)
-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223p 선악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