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이 책은 불편하다.
불편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추적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는 어렴풋이 짐작하던 사실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있다.
이 책은 이제는 명실상부 지구상의 지배자로서 자리매김한 지극히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종’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에 대한 자기고백이고, 자아성찰이다.
분명한 건 ‘사피엔스’는 지구 최악의 종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들을 억압하고 멸종시켰으며 필요이상으로 파괴해왔다는 점이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문제인식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와서 환경 등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단순히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그것은 절대로 범지구적인 사랑이나 그것을 초월하는 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생존과 정복을 위한 도구고 수단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상, 종교, 국가 등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태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것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왜’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되는데, 지배층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닌 듯 하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사상들이 생겨나면서 집단은 통일된 생각과 방식을 추구하게 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사상’이라는 미명하에 통치하기 쉬워졌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종교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듯 착각을 하며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획일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는 사회적 합의로써,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에 의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개별 국가들은 거대한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숨긴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는 등 국민과 국가의 관계가 주객전도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상, 종교, 국가가 세상을 통치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것은 ‘돈’의 지배 하에 있다. 화폐가 등장하면서 빈부격차는 가속화되고 자본주의 등장으로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의 우월함이 입증되었고, 모든 인간들을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아래 통합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모든 행위와 가치에 대한 기준이 ‘돈’이라는 환산가능한 가치로 전이되면서 서열화되고 경중을 따지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이루어온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돈’ 역시 사회적인 합의에 지나지 아니하며 모두의 공통된 합의, 즉 약속없이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가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돈의 종속되기를 자처하며 모두가 제로썸 게임에 동참하고 있다. 그것은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파괴하며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체계화시켜온 것인데, 이러한 상상의 비약들이 결국은 사피엔스 종족 내에서도 서로를 파괴하며 그것을 성장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피엔스가 무지하고 욕심많은 신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들이 누구보다 연약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결핍과 생존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 하여금 소통하고 기록하게 하였고, 그러한 과정들이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을 거쳐서 지금의 사피엔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속에서 있었던 불편한 진실과 잔인하고 비열한 역사들은 승자들에 의해 재편집되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우리 개개인만 보더라도 각자의 과거와 과오에 대해 재편집하고 왜곡하지 않는가, 그렇게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 되어가고 그 기록의 저편에는 수많은 희생과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는 그 어떠한 것도 당연하지 않고, 떳떳하지 않을 수 있다.
<지리의힘>에 느꼈듯, 우리가 노력과 성장의 결과라고 생각해온 것들은 사실은 필연에 기반하여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이 모여서 이뤄낸 산물이고,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것들을 취하고 향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는 오롯히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자만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쉬운 점이나 불만들은 차치하더라도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으면서 의식주와 교육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지금 책상앞에서 졸린눈을 비비며 서평을 쓰면서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출근’이라는 점은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끝으로, 사피엔스의 ‘결핍’처럼 나에게도 ‘결핍’은 나의 노력의 원천이고, 성장에 대한 동력이었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려왔고, 그것에 대한 감사함들을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나의 ‘결핍’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약탈과 폭력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없으며, 현재의 사피엔스들은 서로가 평등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하고 냉소스러운 현실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결국에는 나아갈 것이고, 조금씩 변화속에서 더 좋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변화를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지않은 것들을 당연하다고 했을 뿐이고,
그러한 행위들을 해온 당연하지 않은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서평은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하며 한편으로 무책임한 나에 대한 기록이자 자기반성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