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 발병 초기에는 전 세계가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점차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느새부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다루는 언론과 서적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책들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보여준 인류의 대서사시, <사피엔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왜 이 책에 손이 갔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하라리 아저씨가 책 중반부에 친절하게 대신 답해주셨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발 하라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겸손 덕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필연적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제도, 종교, 체제 등 모두 과거 인류들이었다면 이게 뭔지 들으면서 기겁했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필연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무언가들을 인류가 창조하게 된 동력에 주목하였습니다. 바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왔는지 역사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상상력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상의 힘
저는 제 자신을 공상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제 MBTI는 정말 좋은 증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는 지구 어느 동물보다도 공상적인 동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처음 맞닥들였을 때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이렇게 26년 인생동안 공부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오직 상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니. 하라리 아저씨가 제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려는게 아닌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패닉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실 허구를 창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 종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인류가 지구 최고 포식자 위치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형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허구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유전자를 뛰어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사회가 이에 대한 증명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렇게나 거대한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뭉쳐서 협력을 시작한 인류는 아주 재미난 허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도 이에 해당되죠. 특히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핵심 개념들 또한 허구라고 하라리 아저씨는 이야기합니다.
수십억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는 물론이거와 자본주의와 같이 현대사회을 이루는 핵심 룰들도 모두 허구입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믿고 자유라고 외치는 개념들도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상호 주관적” 개념으로 분류가 됩니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유발 하라리
이렇게 온 세상이 허구가 가득한데, 실재만을 바라보는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안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러한 허구 만드는 것에 동참하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허구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우리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과학혁명들과 이를 뒷받침해준 허구적 사회구조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규범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인권과 평등으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까지도 자유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였다는 점인데요. 생각에 대한 자유와 이를 표출한 자유는 모든 인류에게 각자의 허구를 만들어줄 권리를 쥐어줬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칼 마르크스는 왕이 아닙니다. 성공한 재력가는 더더욱이 아니었구요. 이런 일반적인 동네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공산주의라는 허구는 20세기 후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근대 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일반인은 허구를 만들어낼 시간조차 부족했으니까요.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는 미국 국민의 2%도 안되는 인구만이 농업인구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90%가 얽메였던 과거가 더이상 아니라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98%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허구를 만들어낼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심지어 농업인구인 2%마져도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저녁엔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도 더욱 더 빨리 변화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허구가 허구를 낳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사회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라리 아저씨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성을 “끊임없는 변화”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의무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