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

A book for everyone and everyone, also everyone

A book for everyone and nobody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모두를 위한 책이지만 모두가 이 책을 통해 동일한 메시지를 가져갈 수 없는, 누구를 위한 책도 아닌 책.

저자가 서두에서 말하듯, 이 책은 단순히 텍스트를 읽어서는 안 된다. 텍스트 너머의 저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짧은 책이었음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너무 빨리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 철학과 낭만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던 시절이 생각났다. 철학 교양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며 철학 교수님께 찾아가 삶의 길을 묻던 시간이 있었다. 20살은 모두에게 그렇듯이 세상에 처음 나와, 처음으로 나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점이다. 나 또한 무한히 펼쳐진 자유와 꿈과 희망을 마주하며 남들과 다른 삶, 나만의 삶을 꿈꿨었다.

우리는 타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스스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똑같은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 p147

그렇다. 대학교 4학년부터 획일화된 생각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 남들처럼 좋은 회사에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모두가 똑같은 취업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만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똑같은 삶을 향해 걸어간다.

‘You should’

니체는 ‘어떻게 사람은 본래의 자기가 되는가?’ 라는 대담을 말하며 인간 정신의 세 가지 변신을 이야기한다. 낙타. 사자. 아이

강하고 인내력 있는 정신을 상징하는 낙타. ~을 해야만 한다는 You should를 의미하는 낙타. 우리는 사회에 나오면서 대부분 낙타로서 살아간다.

취업하기 전 어른들께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너 하나 잘 먹고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결혼하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려면 좋은 곳에 취업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 그렇게 우리는 모두 똑같은 낙타가 되어 우직하게 나아간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며, 남들과 같은 고민을 하는 나를 보며 내 삶에 의문점을 가질 때가 있다. 삶이라는 무거운 단어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핑계를 대고 있는 나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 p71

니체는 말한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나를 제대로 직시하며, 나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하라고. 삶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 생각이 정의하는 것이다. 현재 또한 그렇고 미래 또한 그렇다.

지금의 낙타의 인생에 안주하는 순간, 니체가 말하는 군중이 된다. You should에서 I will로 문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이제 사자로 나아가보자

‘I will’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사자. I will을 의미하는 사자.

저자도 말하지만, 낙타 -> 사자 -> 아이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정신은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 필요한 정신이다

나는 ‘I will’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다행이다. 나는 낙타에서 사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라 생각한다. 현재의 남들과 같은 내 삶에 불만을 가졌던 적도 있지만, 나는 현재의 내 삶을 사랑한다. 힘들 때도 있지만 치열하게 일하며 보람도 느낄 수 있는 회사가 있고, 이 경험을 토대로 Step 2를 준비하고 있다.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 이 나이에도 많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만든다. 또한 1년에 한두 번 새로움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영상 편집에 도전했다. 향후 Step 2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 소리친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과 영혼은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그래서 부모님은 아직도 가끔 잔소리하신다. “넌 그 나이 먹고 아직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하고 사려고 하냐고” 그렇다. 난 자유롭게, 재밌게 살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가볍게 살 수 있고, 가볍게 살 수 있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 p231

‘I am’

새로운 가치 창조와 긍정을 상징하는 아이. I am을 의미하는 아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기 위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정신 상태이다. 인간의 욕망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새로움에 항상 열려 있으며, 모든 상황과 시간에 긍정적인 존재.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

나는 아직 아니다. 평생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목적이 아니라 다리인 것처럼, 끊임없이 다리를 놓을 것이다.

초인의 과제는 이 땅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모순을 감당할 수 있을지입니다. 모든 모순과 대립을 내면에 품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초인입니다 – p76

모순은 창과 방패라는 뜻이다.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선전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 또한 세상의, 다른 사람의 수많은 모순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제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내 모순에는 자비롭다. 이래서 나는 아직 초인이 될 수 없다.

니체도 말하지만, 자신의 악한 모습까지 직시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가면에 나 또한 속을 때가 많다. 인간이 창조한 신화에 인간이 통제된 것처럼.

아이가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이유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이 가질 수 없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모습은 대립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다. 아이의 눈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때로는 고독의 시간을 가지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극복해 가야겠다.

‘I’

차라투스트라의 모든 내용은 ‘I’ 이다.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절제,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겠는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마지막 부분이라 생각한다. 앞부분의 자기 극복과 초인 사상, 영원회귀 등 무거운 주제로 나를 촌철살인 했다면, 뒤에서는 자기를 사랑하며, 웃으며, 춤추며 가볍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말하며 이 책의 정점을 찍는다.

각자의 목표는 다르지만, 그 모든 목표의 근원은 행복이라 생각한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의 태양이 될 수 있다.

아직은 웃으며 살지만, 줄어드는 웃음과 춤추지 못하는 내 삶에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으니 작은 것에도 웃으며 살려 한다. 부끄럽더라도 즐거울 때는 춤을 추려 한다. 누군가 말도 안 된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도 안 된다 생각할지라도 작은 발걸음이라도 떼보려 한다. 내 안의 악덕을 인정하고 악덕 또한 내 인생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관점을 바꿔보려 한다. 나를 경멸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인생에 한 번은, 아니 인생을 함께 해야 할 책

인상 깊은 문구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만이 삶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삶의 온갖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자만이 삶의 모순과 비극적 이중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삶의 모순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삶을 긍정할 수 없습니다 – p7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들 모두가 나를 부정하게 될 때 비로소 나는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 p7

A book for everyone and nobody – p17

우리는 기존 삶의 방식에 지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도, 기존의 삶을 없던 것처럼 할 수는 없거든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도 내려가는 것이에요 – p37

태양은 때가 되면 지죠. 하지만 태양이 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세계를 비추어주죠. 그래서 사람이 몰락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빛이 있고, 또 다른 계몽이 있고, 또 다른 깨우침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 p39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 있다 – p40

정말 경멸스러운 존재는 자기 자신도 경멸할 줄 모르는 사람 – p43

절대적 규범이 해체되고 이제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미가 상실되는 시대, 이것이 우리가 사는 21세기입니다 – p55

신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가치인데, 어느 날 우리는 가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그것이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으로 생각하고 절대화했어요. 이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현재 우리는 전통적 가치가 붕괴하고 새로운 가치가 부재하여 가치의 혼란에 처한 상태죠 – p59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 p71

초인의 과제는 이 땅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모순을 감당할 수 있을지입니다. 모든 모순과 대립을 내면에 품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초인입니다 – p76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주권적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려면 때로는 치열하게 고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독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냥 휩쓸려서 살아갑니다. 남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남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요. 그것은 니체가 마지막 인간이라고 일컫는 시장의 군중인 거죠. 니체는 군중이 되지 말자고, 휩쓸려가는 삶을 살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 p89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자신의 개성을 존중 받기보다는 획일화되어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전락하기 때문에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 p98

벗을 가지길 원한다면 그 벗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벌이려면 적이 될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의 벗 안에 있는 적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벗을 침범하지 않고서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그대의 벗 내면에서 최상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벗에게 대적하는 동안 그대는 마음으로 벗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 p105

악덕이 없으면 덕성도 없어요. 우리가 덕성을 갖추려면 자신이 지닌 악덕의 얼굴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 p115

전통적 도덕은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모든 덕성은 개인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덕성은 내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어진 덕, 철저하게 내가 선택하는 덕이며 그 덕성을 실행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강요되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되기에 행하는 덕이 진정한 덕이라는 의미에요 – p119

그대는 나라고 말하면서 이 말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좀 더 위대한 것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대의 몸이며 그대의 몸이라는 커다란 이성이다. 이 커다란 이성은 나를 말하지 않고 나를 행한다 – p125

낙타 : ‘나에게 제일 무거운 것은 무엇인가?’ / You should / 인내력

사자 : 자유정신 / I will / ‘나는 무엇을 파괴해야 하는가?

아이 : 사자가 자기의 의지를 갖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을 지닐 때 비로소 도달하는 단계 / 삶의 시작이죠. 삶을 즐기듯이 놀아요. / I am / 긍정의 힘

인간은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 위로 널리 퍼져 있던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였다 – p145

우리는 타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스스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똑 같은 삶이 펼쳐질것이라고 단언합니다. 펼쳐진 것을 감출 수 있는 자기만의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삶을 위해 심오한 환상이 필요해요. 모든 가치는 환상이에요. 환상이 없는 가치는 없습니다 – p147

니체는 구세주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구세주가 고통을 대속하고 고통을 부정하면 우리는 마치 고통 없는 삶이 가능한 것처럼 착각해요. 구세주 때문에 궁극적으로 삶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에요 – p150

바다는 스스로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허용할 수 있거든요. – p161

사람들은 완전히 노예처럼 행동하면서도 노예라는 낱말을 두려워한다 – p169

자기 자신이 되려면 끊임없이 타인과 차별화해야 합니다. 왜 다른 사람이 한다고 나도 해야 하는지 질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자신의 길을 걷게 됩니다 – p176

왜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전통 철학에서 이야기했던 의지와 권력보다 훨씬 새로운 것들을 말해줄까요? 니체는 전치사를 하나 붙였어요. Will to Power. 우리의 의지는 항상 권력을 지향한다는 뜻이죠. 지향성 자체가 인간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삶은 권력에의 의지라고 볼 수 있겠죠 – p183

‘너 자신을 알라’ ‘지나치지 마라’ ‘네가 사는 삶과 이 삶의 터전은 영원히 반복되고 반복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환상과 망상에 불과하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와 다른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p203

삶을 깊이 보는 것만큼 인간은 고통도 깊이 본다. 그러나 용기는, 공격하는 용기는 최고의 살해자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라고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조차 죽인다 – p205

위대한 건강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병을 수용하는 능력을 지닌 것이 건강이라고 합니다 – p206

과거, 현재, 미래를 직선적으로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 p212

어떤 과거를 가질 것인가는 과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순간이 결정하는 겁니다 – p219

삶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이 최고의 희망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최고의 희망이 삶에 대한 최고의 사상이 되게 하라! – p224

무거운 세상을 가볍게 견뎌낼 수 있을지가 차라투스트라의 화두입니다 – p226

자신을 사랑해야 가볍게 살 수 있고, 가볍게 살 수 있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 p231

행동은 약속할 수 있으나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은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항상 사랑하겠다고 또는 미워하겠다고, 또는 항상 그에게 충실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언제까지나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한 나는 너에게 사랑의 행위를 입증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더라도, 다른 동기에 의해서일지라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너에게 보여줄 것이다 – p236

우리는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어요.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에요. 그런데 니체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수용함으로써 앞으로의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운명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모르파티는 삶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사상이죠. – p248

차라투스트라의 전체 주제가 자기극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사상은 모두 신이 죽은 시대에 인간의 자기 극복에 도움을 주는 정신적 도구입니다 – p272

고귀한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강자를 존경하며, 또한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이 있는 자,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아는 자, 기꺼이 자신에 대해 준엄하고 엄격하며 모든 준엄하고 엄격한 것에 경의를 표하는 자를 존경한다 – p273

자신은 더럽혀지지 않을 채 무언가를 낳을 수 있을까요? 쾌락과 탐욕 없이 대지와 지상의 사물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의지와 욕심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차라투스트라의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 p290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과 천진난만은 결코 의지와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닙니다. 의지와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순진무구함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욕망을 불태워야 하는 것처럼,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면 심연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은 저녁이면 저편으로 넘어가 모든 심연을 빨아들이려 해요. 차라투스트라도 태양처럼 삶과 모든 깊은 바다를 사랑하고자 합니다. 우월한 인간들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받아 달빛처럼 세상을 사랑하려 하기에 아직 초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몰락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 p291

밤과 낮, 깊이와 높이, 쾌락과 고통, 기쁨과 슬픔. 삶의 다양한 모습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세계의 모든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회귀 사상입니다 – p297

이들이 인간에게 행한 가장 잔인한 일 중 하나는 사람을 너무 슬프고 진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고서는 저편의 세상을 믿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진지하고 슬프게 만들지 않고서는 그들을 도덕적으로 순종하게 만들 수 없어요. 노예도덕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여 삶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탄생합니다. 니체의 관점에서 진지함은 죄악입니다. 우리에게서 웃음을 금지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 삶을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을 파괴하는 것이에요. 웃을 일이 없습니까? 삶의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춤추게 만드는 일이 없습니까? 우리의 의지와 열정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어린아이들은 웃지만, 삶의 고통에 찌든 어른들은 웃지 않습니다. – p302

자신이 설정한 ‘무엇을 위하여’와 ‘무엇 때문에’가 그들을 진지하게,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극복하는 자신의 행위가 곧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웃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초인은 삶을 가볍게 생각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웃는 것입니다. 설령 자기 극복이 실패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어요. 자신에게서 경멸할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삶은 가벼워집니다. 자신을 넘어서서 웃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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