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대표적인 단어를 하나 말하자면 그것은 운명인 것 같다. 나는 운명을 믿는 쪽에 가깝다. 나에게 오는 좋지 않은 일들은 그저 운명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운명을 믿으면서도, 운명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랑에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이 책은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 최근들어 성숙한 사랑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는 사랑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어쩌면 사랑이란 가장 감정적이기 때문에 가장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할 지도 몰랐다.
사랑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닌, 자신을 갉아먹는 일종의 집착과 같은 형태로 변한다.
나는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 중 하나가 이 책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10년이상 진정한 사랑을 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별은 분명 엄청난 고통을 남길 것이다. 어느 심리학 교수가 나와서 누군가와 이별을 하는 것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해치는 일까지 실행하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집착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강하게 이야기한다면 건강하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를 낭만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가 감정을 건들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듯 너무 극적인 운명은 운명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다른 관점으로는 나는 이 책에서 시간을 돌린다면 당신의 운명은 어떻게 바뀔까. 그리고 그렇게 바뀐 운명은 정말 행복한 걸까.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서 바꾼 그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에 대한 것이 생각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주인공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시간을 돌리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나가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행복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과거의 자신에게 여러 제안을 했고, 과거와 현재의 행복을 모두 추구하다가 결국 둘 다 놓치고 말았다. 물론 죽다가 다시 살아나 예전 연인을 오랜 시간 뒤에야 만나긴 하지만 정말 그것이 그가 추구하던 행복일까. 운명이 바뀌기 전에 비해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후회를 없애려고 바꾼 과거는 또 다른 후회를 낳았다.
나는 가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고 싶고 그 일이 정량적인 시간이 필요할 때, 시간을 돌려 1년이라도 빠를때 내가 이러한 생각을 했다면 이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그때 시작했다면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때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자책 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일까. 정말 돌린다면 그 때로 돌아가서 바꾼다면 나는 더 행복해졌을 수 있었을까. 돌아간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낙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나가 내 마음에서 생겨났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경험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때 내가 1년 더 돌아가서 1년간 한 경험을 겪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의 간절함은 사라져있을 지 모른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라는 책은 운명에 대해 나에게 좋은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운명이란 그리고 그 운명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전에 독서 소모임 주제였던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 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
고통, 상실, 좋고 나쁜 것을 포함하여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
이 책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