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규명은 좋았지만 해결책은 글쎄..
1. “삼촌, 저희도 졸업하면 저렇게 늦은 시간까지 야근해야 하는 거죠?”
올해 봄, 저는 10여 년 만에 대학에 다시 돌아와 학부생들과 공부를 하면서 같이 어울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을 수십번 되뇌며 모르면 입 닫고 알아도 모르는 척 온종일 같이 있다. 보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날씨도 참 좋았는데 타지에서 올라온 친구 한 명이 서울의 야경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재’의 차를 타고 북악산 팔각정까지 올라간 뒤 우리를 향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한 여 학우가 말했습니다. “삼촌, 저희도 졸업하면 저렇게 늦은 시간까지 야근해야 하는 거죠?” 이해가 되나요? 그녀는 불 켜져 있는 빌딩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회사원이 된 자신의 저녁 없는 삶을 걱정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단편적인 사실을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어디 기업이 좋은지, 어떤 이중 전공이 공채에 유리한지에 대한 주제가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아재’차의 승객들은 1학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첫 번째 대학 시절에 취업은 4학년들이나 생각하는 것이었고 빠르면 3학년, 혹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1학년을 마치고 입대 후 복학한 다음에 바로 시작하는 것이 ‘국룰’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1학년 1학기부터 학점과 커리어를 관리해야 로스쿨이든 대기업 공채던 시도해볼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사회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류가 없어진 상태에서 지금 청년 세대가 겪을 여러 부침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읽으며 느낀 저자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한국의 불평등은 연공서열에 뿌리내린 한국형 위계 구조에 있다.
둘, 386세대가 장악한 현 사회의 위계 구조는 견고하다.
셋, 386이 잡은 세대의 주도권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
넷, 현 상황은 386세대의 연금구조를 개혁하고 그들이 축적한 자산에 대한 과세를 엄격히 해 청년 세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특히나 주거권에 관하여)
2.이제 시대가 변한만큼 전체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책은 사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학교 도서관만 둘러봐도 주변에는 공무원시험이 아니면 회계사와 같은 전문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모두가 공무원과 전문직을 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도 해보았지만 제가 감히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생각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유교에 뿌리내린 연공서열이 존재하고 장유유서를 미덕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시장 논리와 회사의 경쟁은 장유유서는커녕 능력이 없으면 ‘가족’과 같은 직원을 나락을 내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이중적 가치가 혼재하는 세상에서 386과 후배 세대들이 겪을 내적갈등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후배 세대는 올라가려고 애쓰지만 이러한 내적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채로 자신의 위치를 물려주지 않는 386은 공포심에 오히려 있는 대로 그들의 자산을 긁어모으려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시대가 변한만큼 전체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혁명으로 그 체제를 뒤집을 수도 없습니다. 감히 추정하기로 지금의 후배 세대는 386처럼 응집력과 ‘쪽수’에 현저히 뒤처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 책에서 불평등의 원인을 386으로 대변되는 한국형 위계 구조로 꼬집은 것은 일견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저자 자신이 속한 386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는 전달하지 못합니다. 분명 기득권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자신들의 연금개혁과 자산에 대한 징세를 통해 청년들에게 그 몫을 돌려줘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자신도 자각했을 것이라 느낄 정도로 공허합니다.
3. 이 책을 읽으며 확실하게 안 것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 행위다 라는 명제 속에 ‘권위적 배분 자체가 곧 평등을 상징한다.’ 는 전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확실하게 안 것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 행위다 라는 명제 속에 ‘권위적 배분 자체가 곧 평등을 상징한다.’ 는 전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암울한데 답 없는 문제만 분석한 글을 보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저 386의 아래에 있는 세대는 세월이 흘러 자연의 섭리대로 선배들이 떠나면 그제야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그것만이 답이라면 지금의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결국 재현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물론 모두가 주지한 대로 선거를 통해 해결하는 것만이 방법이겠습니다만 책을 덮으며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