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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ng To Meaning

우리는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서의 삶을.

‘꼰대’라는 단어는, 현세대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우울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된 문화를 가지고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단어지만, 이제는 과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꼰대라고 불리는 현실은 나만 느끼는 것인가.

과거는 중요하다. 과거가 모여 현재가 되고, 현재도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책에서 보여주는 수용소에서의 삶은 자신과 어떤 관계가 없는, 단순한 역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수용소의 삶은 우리 바로 옆 북한에서도 펼쳐지고 있고, 인간 역사의 끊이지 않았던 전쟁의 소용돌이가 다시 찾아온다면 우리 삶에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역사이다.

과거는 구닥다리라는 현시대의, 세대의 문화는 조정이 필요하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이정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Liberty’

저번 ‘자유론’ 책에서, 인간의 삶에 ‘자유’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알았다. 그리고 ‘자유론’이 이론 중심이었기 때문에 어렵고 아쉬웠던 점을, 이 책에서 완벽히 보완해 주었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 p108

저자는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누구나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수 있는 그런 삶 속에서도 인간의 선택에 따라 다른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수용소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며 읽었다. 이기적인 탐욕만을 앞세워 남을 사지로 몰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살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생각하며 비록 단명할지라도 인간적인 삶을 추구했을까?

수용소 같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자신의 본 모습을 알기 쉽지 않지만, 난 아마 두 선택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헤맸을 것 같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죽음이 함께하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선택하고, 자기 삶의 가치를 상황이나 타인이 아닌 본인의 자유 아래 두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상황에 굴복한 사람들이 더 많았겠지만, 반대의 선택을 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기에 인간의 역사가 밝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삶을 생각해봐도, 많은 사람이 시련 속에서 살아간다. 수용소에서의 삶만큼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피로도와 선택의 어려움은 만만찮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24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나 또한 최근에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평생을 던져왔고 던졌을 질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관점의 변화가 생겼다. 인생의 의미는 이미 정해져 있거나,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시련과 행복 속에서 삶의 의미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내 인생이 끝날 때가 오면 내 인생의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삶에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의미 부여할 것인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과 결과 안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가 있다.

‘Responsibility’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 p163

저자는 자유의 여신상 반대편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온전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의미 실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책임.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배운 두 단어이지만, 섞이기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한 사람의 어깨에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 인생은, 방종의 길이며 의미 실현을 할 수 없는 길이라 말한다. 따라서 인생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철학적 고찰이나 정신적 내면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공감이 갔다. 나도 현실이 힘들고 답을 찾기 어려울 때면, 철학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핑곗거리를 찾으려 한다. 답은 나 자신한테 있고, 내가 부딪히고 있는 현실 속에 있는데 말이다.

저자는 인간이 Willing to Meaning (의미에의 의지)를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모든 철학적, 심리학적 견해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이 현실 세계에서는 정말 필요한 견해라고 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인이 한 번은 ‘의미 없는 삶’에 대해 술자리에서 푸념했을 것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시련, 행복, 고통 등 모든 행동 속에서, 모든 현실 속에서.

한 줄 평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책

인상 깊은 문구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p17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 p108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 p109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 p110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 p117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p120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24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p125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26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 p128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 p130

실존적 좌절 그 자체는 병적인 것도 병원적인 것도 아니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절망도 실존적 고민이지 정신 질환이 아니다 – p156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돼야 할 의미가, 다른 극에는 의미를 실현시킬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 p159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 p163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p165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 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 p176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 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 p180

자유는 이야기의 부분이고, 절반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책임이라는 적극적인 측면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극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내가 동부 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193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p200

이 말이 곧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2장에서 얘기했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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