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

有 of 無

쿵!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발생한 소리이다.

밀란 쿤데라를 좋아했기 때문에 30대 초반에 사서 읽었던 책이지만, 당시에는 큰 울림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인생의 여러 큰 변화를 겪은 30대 중반이 된 지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무의미의 축제’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책 제목의 중요성이 이렇게 크게 다가왔던 적은 없었다. 149p라는 짧은 책이지만, 책을 덮고 나서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가 하려는 모든 말과 생각이 함축적으로 다가왔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 p147

우리는 ‘의미’의 홍수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를 갈망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최근 직장에서의 불안한 상황과 여러 환경 변화로 인해 단단하던 나의 자아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중 많은 부분이 의미 갈망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느꼈다. 무의미에서 행복을 느꼈던 내가 나이듦과 환경 변화를 핑계로 많이 변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내 내면에 울렸다.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 – p136

SNS와 언론의 확대는 획일화를 가져왔다. 행복한 모습을 따라 하면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행복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자아를 학대하는 사람들. 비록 획일화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획일화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자아와 행복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추종을 하는 극단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이다. 정치적 기득권층과 경제적 기득권층이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악용하는 점도 문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획일화와 의미 추종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세태를 이 책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무의미하다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문화가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이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시간이다. 이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은 본질을 잃을 수 있다. 꼭 무언가를 해야만 자아를 만들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아와 행복의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 p99

나는 와이프와 저녁이나 주말에 항상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하며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서로 연기를 하며 헛소리를 하고, 의미 없는 장난들을 치며, 이상한 상상과 생각을 말하며 서로 웃는다. 의미 있는 일을 찾지 않는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생각나지 않는 말들로 시간을 보내지만 행복하다. 이 책을 보고, 이 무의미한 순간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유머와 무난히 좋은 기분을 만드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내 인생에 무의미의 축제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 책의 처음과 중간, 끝까지 무의미한 책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무의미라는 깨달음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의미를 찾지 않는 무의미의 향연

인상 깊은 문구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어지지 – p25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p33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 p57

여러 가지 고독들로 둘러싸인 고독 – p80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 거야, ‘무한히 좋은 기분’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 p99

하늘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구나, 아름다운 나의 삶이 전보다 더 아름다우리라고. 삶은 죽음보다 강한 것, 삶은 바로 죽음을 먹고 사는 법이니! – p100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 p132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 – p136

물론 획일성은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그리도 이 공원에서는 획일성이 좀 다양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는 네 개별성의 환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 p136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 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 p139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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