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재직중이던 회사에서 총파업을 진행했다. 남들과 똑같이 단순히 취업해서 돈을 버는 삶에 익숙했던 나였기에, 나를 뽑아주고 일을 주고 돈을 주는 회사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였기에, 파업은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회사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해줄 회사가 필요하다. 서로 필요한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현재의 고용 피고용의 관계는 과거의 지주와 노예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지키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책은 참 위험한 책이다. 가짜노동을 무조건 비판할 수 있을까? 저자도 비판을 하면서도 조심스런 입장을 취한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가짜노동 자체도 소중하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이다. 처음에 가짜노동이라는 주제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중간에는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할 만큼 유익했지만, 마지막 저자가 제시한 해결 방법에서 너무 큰 실망을 하게 된다.
노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인류의 문제이다. 하지만 저자의 여러 해결책은 개인이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고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내용이다.
우리 회사만 봐도 가짜노동은 만연하다. 나조차도 냉정하게 바라보면 가짜노동은 정말 많다. 하지만 가짜노동은 어떤 사람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저자가 책에 가짜노동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례나 관점을 넣었으면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도 가짜노동으로 인해 자존감을 잃고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가짜노동 때문일까? 내가 볼 땐, 가짜노동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업과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명확히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간격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내 업인 영업을 예로 들어보겠다. 많은 사람들이 영업은 외부에서 버리는 시간도 많고 개인적인 일도 자유롭게 본다며 쉽게 생각한다. 솔직히 가짜노동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회사의 핵심업무를 추진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성과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영업사원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찾는다. 후배들 중 영업의 가짜노동으로 자신의 뭐하는지 모르겠다면 퇴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본질적인 대화를 해보면 영업사원으로서 갖게 되는 대인관계에 대한 압박, 회사 실적에 대한 압박, 이 모든 압박을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업의 특성이 자신과 안 맞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가짜노동을 핑계로 합리화한다.
당연히 내 관점이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직업의 종류만큼 가짜 노동은 다양하고 그 노동을 가짜라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노동을 대하는 인간의 수만큼 노동의 의미와 판단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짜노동을 근절함으로써 줄어드는 근무시간과 노동인력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대안 없이 개인에게 가짜노동을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것은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개개인 노동자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제시한 기본소득은 개인적으로 긍정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토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듣고 싶다.
주제 자체는 정말 참신했지만, 저자의 생각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전문적 견해와 인터뷰만 들어간 것이 아쉬운 책이다.
인상 깊은 문구
다시 말해, 노동시장에 지식노동자가 넘쳐나 일종의 과잉 사태를 유발했다. 이 현상을 연구한 런던 킹스 칼리지의 앨리슨 울프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오직 잉여 대학 졸업생을 흡수하기 위한 목적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왔다. 이는 점점 더 많아지는, 그리고 높아만 가는 교육이 우리 삶의 수준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념의 결과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경험적 증거가 실은 꽤 허약하더라도 말이다” – p57
스트레스는 할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심한 지루함, 보람의 결핍, 무의미한 타성으로도 유발된다. 스트레스의 축적은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과 더 관련 있다. – p83
노동이 그 자체에 가짜 노동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1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줘야 하는 신기술은 사실상 우리를 점점 더 옭아매왔다. 세탁기~자동차~이메일~ 가속화에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냈다 – p108
만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10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10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진다면 놀랍게도 그 일은 결국 25시간이 걸릴것이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기만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 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업무는, 써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중요성이 증가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 p127
가짜 노동의 확장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첫 번째 조언은 바쁘다는 말을 그만두고 집에 가는, 꽤 간단한 것이다 – p153
인력을 신중하게 채용한다면 직원의 97%가 제대로 일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나머지 3%가 일이킬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 방침을 규정하고 시행하면서 끝없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합니다” – p182 넷플릭스
관리층은 다른 이들의 노동에 기대어 계속 꾸준히 증가한다. 그때마다 품질관리나 그 분야의 다른 기관보다 뒤쳐지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따라붙는다. 그렇지만 아무도 품질관리, 홍보, 연구팀을 감시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착수한 프로젝트를 들여다보고 대체 어떤 가치를 생산해냈는지 평가하지 않는다 – p194
직장에 출근해서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심각하게 길게 느껴진다. 결국 지루함은 실존적 고통에서 수치감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유용한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일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모없어진다는 것, 그러면서도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혐오와 수치감으로 이어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빚진 기분을 느끼게 한다 – p281
감사와 규제가 대부분의 사람이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일일이 점검함으로써 거짓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다소 자기만족적 구조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목적은 문제점을 찾아내는 게 아니었다. 그 정도면 괜찮다며 면피하려는 것이었다 – p303
노동은 인간의 내면을 외면화시키고 외부를 내면화시키는 활동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 안에서, 환경 안에서 자리를 찾는다고 헤겔과 마르크스는 말하곤 했다 – p323
노동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어서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적 성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어떤 것이다. 인간이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의 유일한 핵심은 본질적으로 살고 있는가 비본질적으로 살고 있는가의 문제다. 왜냐하면 노동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이루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헤겔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만 세계에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노동이 인간을 세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의 성립과 붕괴가 모두 노동에 달려 있다. – p324
우리가 더 자유로워졌는가 하는, 1930년대 선조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졌는지뿐만이 아니라 ‘일에 더 많은 자유’를 가졌는지 혹은 노동 생활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 p327
그에 대한 해결책이 보편적 기본 소득이다. 모두가 받아야 마땅할 최소한의 금액을 나라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 p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