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우선 이 책을 끝으로 한강 작가의 소설을 내가 자발적으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본래 나 자신을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나, 이번에 한강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 감정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에서부터 [채식주의자]를 거쳐 [작별하지 않는다]까지를 거치면서 한강 특유의 그 음울하고 불쾌한 느낌을 받아왔는데, 이번 책은 진짜 그 결정판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글 거리는 눈빛이 느껴졌던 [소년이 온다], 차가운 눈보라와 거친 파도에 둘러싸인 백사장이 떠오르는 [작별하지 않는다]
우선 이 책의 소재가 역사적 사건인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만큼 작가의 이전 작품이자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와 비교하여 이야기를 해야 겠다.
소년이 온다는 경상도 출신 나에게는 그윽하고 지긋하게 나를 바라보는 피해자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외침 없이,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역사의 비극에 눈감아온 나를 꾸짖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눈빛이 이글거리며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전혀 다르다. 수필인지 소설인지 애매한 도입부에서부터 무언가 맥락을 잡기 힘든 1부가 지나고 제주 사투리를 해석해가면서 이야기를 이해해가지만 그 내용이 점차적으로 고조되면서 소설의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2부, 마지막으로 말하지 못하는 화자가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3부까지 죽 이어지면서 일종의 계단과 같이 그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결국 이 책의 끝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차가운 바닷가 모래사장에 심한 눈보라가 치고 파도가 세차게 백사장을 노리며 들어오는 그런 모습을 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 차이는 아마도 이미 7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기에 더 와닿지 않기 때문도 있고, 상대적으로 자료가 부족하고 더 오랜기간 터부시되어 온 역사적 비극인 탓에 그에 대하여 잘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관찰자를 관찰하다
이 책의 구조는 결국 액자식 구성이라 하겠다.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겪은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관찰자인 인선의 엄마를 인선이 1차적으로 관찰하고, 인선의 말과 작품을 바탕으로 인선이 관찰한 사건을 다시 한번 주인공이 관찰하여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 중대성에 비해 덤덤하게 사건을 서술하고 그 어떤 곳에도 그 학살이 발생한 동기나 원인제공자에 대한 원망 없이 일반국민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건을 그려나 가고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창가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그런 액자식 구성, 관찰자에 대한 관찰의 구조로 의도적으로 그 심리적 거리를 멀게 느껴지도록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사건의 참혹성, 잔인성, 비극성, 그리고 그 사이에 가족애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작가의 의도가 십분 이해되었고 그 주제의식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하였다고 느껴지는 정도였다.
관찰자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 책은 결국 사람들에게 제주 4.3. 사건이라는 다소 생소한 사건에 대하여 매우 무거운 묵언의 압박을 주면서 이 책의 실마리가 모두 풀려가는 구조를 통해 그에 따라 이 책의 주제의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반복되는 역사 2025년 대한민국
이 글을 쓰는 오늘을 공교롭게도 3.1.절이고 올해 3.1절의 화두는 탄핵시위였다. 대한민국은 2024년 말 12.3. 계엄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와 헌재의 변론이 종결되고 이제 판단만 앞둔 3.1절 시위였다. 특히 탄핵을 반대한다는 시위는 매우 흥미롭다. 제주에서 그 오래전 서북청년단이 했던 것과 같이 빨갱이 척결이라는 용어를 쓰며 대한민국의 사법기관, 입법기관, 선관위 등 헌법기관 등이 모두 중국의 손에 놀아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보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한민국 사법질서를 파괴하여 왔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다.
어쩌다 그 오랜 시간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우고자 노력했던 그 망령은 되살아난 것일까. 그것도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지방소멸이 가시화되면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해야할 시점에 하필 다시 그 독재이 망령이 되살아난 것일까.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아픈 현대사의 상처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현대사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며 비극적인 현대사로 부터 학습은 사실 그 자체를 뒤집으려 애쓰며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쫓는 사람들이 아닐까
곧 결론이 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이제는 진짜 비극적인 역사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크나큰 이념의 골을 넘고, 크나큰 지역의 벽을 너는데 정말 오래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이제와서 쪽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한줄평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사람들에게 반성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한강소설의 장점이 잘 발휘된 좋은 책이다. 특히 이러한 책이 있음에도 비극을 반복하려 함이 올바른 것일까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